:: 경맥53 - 경북 중고 53회 동기회 Vol.2 ::
   
     

제목: 현재의 개념 그리고 삶의 의미
이름: 이상봉


등록일: 2006-04-18 14:31
조회수: 1572 / 추천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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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과 이어져 있지만 우리가 접하여 살고 있는 세상은 늘 현재 뿐이다.  미래는 항상 현재와 간격을 가지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결코 만날 수는 없는 개념적 시간이며 상상의 공간일 뿐이다. 하지만, 미래를 결정 짓는 것은 현재의 생활 태도임을 깨달아야 한다.  미래는 어느새 현재로 변하기 때문에 미래가 곧 현재인 셈이다.  


시간의 흐름은 파도와 같다.   미래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현재로 다가와 눈앞에서 사라지며 저 멀리엔 또 다른 미래가 만들어져 다가오는 것이다.  실존하는 현재는 빠른 속도로서 끊임없이 사라진다.  사실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흔적과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다가오는 파도의 모양을 미리 살펴보면 곧 닥칠 파도의 강도를 예측할수 있듯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현재의 삶을 알차게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쓰라린 상처를 떨쳐내지 못하거나, 미래의 풍요로운 삶만을 생각하며 현재를 억누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도 과거에 살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현재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  그들의 대다수는,그러한 삶이 자신들의 미래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기다리던 미래는 소리도 없이 사라지며, 새로운 미래가 끊임없이 만들어질 뿐이다.  한평생 고생만하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거액의 재산을 대학에 헌납하며 생을 마치는 사람들을 말한다.


세상사람들은 그들의 승화된 행위를 칭송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숭고한 일생은 국가 전체로 보면, 야망을 실현하여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놓거나, 학문적 성과를 이룩하여 관련산업의 발전속도를 올려놓는 것에 비하면 그리 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일평생 고생만하다 떠난 그들의 가여운 인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온다.   남들보기에 많은 재산을 모은 그들이지만, 그들은 미래의 불안이 두려워 현재의 고생을 택하였 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없었으며 미래를 준비하느라 고생만 했던 그들의 현재 또한 없었던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삶은 인생을 송두리채 날려버리는 것에 다름아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멈춤없이 흘러간다. 그것은, 사람들이 삶을위해 만들어 놓은 기준이며 일종의 약속과도 같다.  그러나, 감성의 공간에서는 시간의 흐름은 시공을 초월한다. 이상기후로 인하여 이른 봄에 코스모스가 꽃을 피우거나 비닐하우스의 식물들이 계절을 모르듯이, 동일한 시간대에 살고 있어도, 과거를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미래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  화를 참으며 복수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현재가 없다. 목적을 달성한다 해도 현재를 잃은 손해는 그 무엇으로도 매울수 없다.


진정한 삶의 시간은, 현재를 느끼며 살아가는 시간 뿐이다.  현재를 느낄려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준비된 미래를 현재로 맞이 하여야 삶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를 위한 준비'는 예컨데,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팔자로 살겠다는 뜻이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사물을 느끼고, 노래를 배우고,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며 학습하는 삶이 되었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사라지는 현재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는 생명의 에너지를 시간으로 바꾼 것이며, 실제의 삶 자체이다.  죽음이 현재를 사라지게 만들기 전 까지 미래을 위한 준비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삶의 가치 이기 때문이다.  


현재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현재는 끊임없이 다가와  스쳐 지나가는 감성의 공간'일 뿐, 금방 사라지고 만다.  또한, 현재는 시간속에 함께 움직이지만 시간에 매이지는 않는다.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경험을 하여도, 느낌의 강도나 지속시간은 사람들 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감성적 뇌활동, 즉 현재를 느끼는 시간은 내면의 요구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중요한 생각들에 의해 인식하지 못 하는 수도 있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면 현재라는 공간은 성립되지 못한다. 의식을 잃은 후 깨어나기까지,시간은 흘러도 현재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삶의 태도에 따라,  눈을 뜨고 살아있어도, 현재의 공간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삶에서 현재를 느낄려면, 의식주의 기본적인 본능을 해결 할 수 있는 욕심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혼의 상처가 아무리 크고  남을 굴복시킬 마음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남위에 군림하려는 사람들처럼, 그렇게까지 많은 욕심은 필요하지 않다.  현재속에서 자신의 삶을 느끼려면, 외부로 발산되는 욕망보다는 자신의 내부로 발산되는 욕망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짧은 인생에서 느끼고 경험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남이 대신 해 줄 수도 없는 자신만의 소중한 시간들을 아무런 의미없이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것이다.   남은 생애에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맞이할 봄의 계절이 몇번 남아있는지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물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삶을 놓치는 사람들.... 그들의 이면에 숨겨진 고독한 모습을 보면서, 재물보다 소중한, 쓰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를 느끼는 감성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삶에 대한 태도 또한, 배움으로서 살아가는 연속적인 형태여야  진정한 현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생각함으로서 존재하는 우리들의 삶에서,  현재를 느낀다는 것이 곧 삶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느낌을 저장하고 판단하는 대뇌반구가, 유독 인간의 뇌에서만 크게 진화된 것은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진은 나의 고향 양남에서 감포 중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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