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맥53 - 경북 중고 53회 동기회 Vol.2 ::
   
     

제목: 吳淸源
이름: 정태호


등록일: 2014-05-21 09:43
조회수: 1610 / 추천수: 985


                                                                                              吳淸源


                                                                                                                                                                                정태호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그러니까 1968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며칠 안 된 날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급에서 공부깨나 하던 동네 조무래기들이 날이면 날마다 서로들 집에 모여 놀기를 좋아하던 때였다. 특히 그 때는 중학교 3년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기다리던 때였다. 그리고 그 해는 일부는 입시를 치르고 일부는 무시험진학이 처음 실시된 해였기도 하다.

필자를 비롯한 조무래기 친구들 중 두 명을 제외하고는 죄다 무시험진학이라서 다들 친구 집에 모여서 빈둥빈둥 노는 처지가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모이면 의례히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놀이를 할 테지만 사춘기를 막 벗어나고 있던 친구들인 지라 구슬치기는 이제 시큰둥한 놀이가 되고 말았다. 마땅히 놀 놀이가 없던 차에 매번 리더 격인 친구 녀석이 “우리 바둑 한 번 배워볼까?”하고 제안을 했다.

그 때까지 바둑이 뭔지도 모르는 필자를 비롯한 친구들이 눈이 동그레질 수밖에. 결국 무슨 의논이랄 것도 없이 처음 제안한 친구를 따라서 그냥 바둑을 배웠다. 처음 제안한 친구는 어디서 조금은 바둑을 익혔고, 그래서 모두 그를 따라 동네 서점에 가서 바둑책을 공동으로 몇 권 구입해서는 함께 돌려보며 공부를 했다.

여기서 잠시 자랑 좀 하고 넘어가자면, 그 때 샀던 책들이 아마도 평생을 살아오면서 바둑을 배운 책들 중 기초를 가장 잘 다져준 책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름 이유를 생각해보니 조무래기 때부터 공부라면 어느 정도 인정을 받던 우리 무리들인지라 서점에 가서도 그냥 아무렇게나 책을 사지 않고 서점주인 에게 요것조것 온갖 것 다 물어보고 추천해 주는 책도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대충이라도 읽어보며 우리들 수준에 맞는지? 를 나름대로 충분히 고려하고 서로 토론을 거쳐서 샀던 책들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책을 사고 문방구에서 접이식 바둑판과 돌을 사서 한 쪽에서는 책을 보고 공부하고, 따로 한 패는 서로 대국을 통해서 책으로 배운 것을 실전에 적용해 보면서 한 동안 참으로 열심히도 공부했다.

또래가 서로 경쟁하며 바둑 공부를 했으니 학교 공부 뺨칠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리고 바둑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천장 무늬가 온통 바둑돌이 흘러가는 형상이 되고, 책을 펼치면 글자는 검은 돌이요 빈 공간은 흰 돌이 되어 살아 움직였다. 심지어 길을 갈 때면 사람은 검은 돌이 되고, 그냥 빈 배경은 흰 돌이 되어 움직이는 현상이 한 동안 계속 되었다.

얼마쯤 지나 서로가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붙을 때쯤 예의 그 리더 녀석이 또 제안을 했다. 기원에 가서 우리 실력 점검을 한 번 하자고. 기원이라는 말도 그 때 첨 들었다. 그 즈음 우리들 중 그 리더 녀석은 항상 선구자였다. 조무래기 대부분이 장남이었는데 그 녀석은 위로 형님 둘과 누나도 있어서 형들로부터 보고 배우는 것이 많았는데 우리는 그 녀석의 그런 선각자 같은 역할로 무척 많은 것을 배우는 유익함을 누릴 수가 있었다. 더욱이 그 녀석 집안은 형들과 누나를 비롯해 모두 머리가 좋아서 다른 집들보다 훨씬 배울 점이 많았다.

용돈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라 기원에 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마련하기가 참 쉽지 않았지만, 책 산다고 엄마를 속이고 돈을 마련하던지? 옛날 구슬치기 실력을 발휘하여 구슬을 따 모아 다른 조무래기들에게 되팔아서 마련하던지? 어떻게 하던지 각자 기원 입장료를 마련하여 단체로 기원을 방문하고 실력 평가를 받았다. 놀랍게도 기원 주인으로부터 우리 실력이 9~10급 정도 된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리더 녀석은 우리들 보다 좀 잘 두었으니 8급 정도는 된다고 했다.

바둑을 순전히 독학으로 공부한 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아 9~10급은 된다고 인정받았으니 그 기분을 어디다 비기겠는가!

그러니 동네 어른들이 바둑 두는데 기웃거리며 훈수도 두고, 더욱 더 열심히 서로 경쟁하며 공부를 했더니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에는 다들 5급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물론 리더 녀석은 그 때 이미 3급 이상의 실력이 되어 동네에서는 거의 최고수 수준이 되었다. 녀석은 머리도 특히 좋아서 소위 아이큐지수가 150을 넘는 천재 수준이다. 다른 조무래기들은 거기에 10 내지는 20 정도 못 미치는 수재 수준에 머물고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 그 수준도 대단한 수준이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 부터는 학교 수업을 받아야 하는 관계로 모여서 함께 바둑 공부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노는 날이면 모여서 그 동안의 나름대로 갈고 닦은 실력들을 점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따로 공부를 안했는데도 리더 녀석을 제외하고는 지금 다들 바둑 실력이 기원 2급수준 (인터넷 바둑 기준이면 아마 5단 정도)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리더 녀석은 일찌감치 학교 대표수준 즉 기원 1급수준(한국 기원으로 치면 2~3급수준, 프로 입단 전 단계 연구생 수준에 해당)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바둑을 독학으로 공부했지만 책 속에서 바둑 격언이나 속담을 통해서 인생에서 도움된 것이 상당히 많다.

성경이나 논어나 맹자 같은 서적에서 배운 것은 주로 인성 형성에 있어서 좋은 영향력을 미쳤다고 본다면, 바둑에서 배운 것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실용적인 측면에서 많은 것을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아생연후살타, 소탐대실, 유무가불상전, 적의 급소는 나의 급소, 성동격서, 돌은 두 점으로 키워서 버려라, 2선으로 기지 마라, 양곤마는 만들지 마라, 중앙으로 한 칸 뛰는 수에 악수 없다. 등 수없이 많은 격언들이 실생활에 정말 주옥같은 지침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격언이나 속담들 중에서도 언뜻 생각나는 몇 가지만을 늘어놓아 보았다. 설명을 조금 붙여 보자면,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내가 살고 나서 남을 죽이다” 바둑이니까 상대 돌을 죽여야 이기니까 살(殺)이라는 말을 쓰지만 실생활에 적용할 때 남을 공격하려면 나부터 먼저 몸가짐을 바로 하여서 결점을 없애야 한다는 말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 유무가불상전(有無家不相戰) “집이 없는 자는 집이 있는 자와 싸우면 안 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걸핏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며 불평을 늘어놓는데 당연한 논리다.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어찌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처음 바둑판을 마주 할 때는 양 쪽 모두가 아무 돌도 없다. 그렇지만 바둑을 두어 나가면서 집을 짓는 쪽이 있고, 집을 못 짓는 쪽이 있다. 그 때 집이 없는 쪽에서 집이 있는 쪽에 시비를 걸어서 싸움이 붙으면 반드시 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에 가까운 가르침이다. 인생살이를 한 판 바둑이라고 본다면 실력 있는 사람이 이기고, 실력 없는 사람이 지는 것은 당연한 법. 바둑판에서 돈은 곳 집(家)이다. 그러므로 돈이 있으면 이기는데 왜 죄가 되냐! 돈 없는 게 죄지.

성동격서(聲東擊西)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성의 동문 쪽에서 공격할 것처럼 함성을 지르면서 실제는 서쪽 문을 공격한다.”는 말인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서 요긴할 때가 많다. 물론 조금은 야삽한 경우도 있지만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큰 허물은 아닐 듯하다. “적의급소는 나의 급소” 이 말은 만고의 진리이며, “돌은 두 점으로 키워서 버려라” 아무리 급박하고 궁벽해도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꼭 죽을 것만 같고, 희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기회를 주면 조금은 쓸모가 생긴다는 말 일거다.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2선으로 기지 마라”는 궁벽하게 살려내기 보다는 죽이는 것이 판 전체를 위해서 낫다는 말이다. 바둑에서 끝내기가 아닌 초반, 2선에 돌이 많이 놓이면 패망한다는 말이다. 조직에서도 능력이 안 되는 친구를 억지로 키우려다 보면 자칫 전체 조직을 손상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과감히 포기할 수밖에. “양곤마는 만들지 마라” 곤마는 완전히 살아 있지 못한 바둑돌을 일컫는데 두 군데에서 살아 있지 못한 돌을 살리려고 노력하다가는 비록 그 둘을 다 살렸다고 하더라도 전체 판세를 망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흔히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고 하는데 자칫 한 마리 토끼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경고하는 격언이다.

“중앙으로 한 칸 뛰는 수에 악수 없다,” 보통 바둑은 포석단계에서 네 귀부터 먼저 서로 점령하면서 네 변을 점령하고 중앙을 점령하는 순서로 두는데 먼저 중앙을 선점하는 것이 좋다. 라는 뜻이다. 세상살이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웅다웅 노리는 곳을 먼저 선점하면 반드시 유리하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넓디넓은 세계를 향하여 먼저 나아가는 사람이 유리한 것 아니겠는가! 한 칸 뛴다는 말은 도약을 의미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냥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니고 세계를 향해 도약해야 한다는 말. 바로 그 말이다.

제목을 오청원이라 정해 놓고 너무 많은 말을 했다.

필자가 처음 바둑을 배울 그 즈음에 바둑계를 주름잡던 오청원(吳淸源) 즉 吳淸源(우칭위엔) ‘살아 있는 기성(棋聖)’이 금년에 출생 백 년째를 맞는다고 신문에 기사가 났다.

아주 오랫동안 오청원(吳淸源)선생이 대만 출신인 줄 착각했었는데 중국 복건성(福建城,후지엔청) 출신으로 일본이 중국을 점령했을 때 자연스럽게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타의에 의해서 일본에 가서 눌러 앉은 우리의 재일 동포 1세대와 같은 경우는 아니고 자의로 갔지만 비슷한 경우라 할 것이다. 대만 출신 프로 야구 스타선수를 거쳐 감독이 된 왕년의 홈런타자 왕정치(王貞治)와는 완전히 다른 경우다. 왕정치의 경우는 돈 벌러 가서 눌러 앉은 경우이며, 공부하러 갔다가 자의로 눌러 앉은 우리나라 출신 프로기사 조치훈과 같은 경우라 할 것이다.

조치훈의 스승인 木谷實선생이 생전에 오청원선생과 쌍벽을 이뤘다. 현재의 세계 바둑계를 이룩해낸 공로자들이 이 들 두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들 천재의 반열에 드는 사람들이다. 천재는 단명하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두 천재는 장수하는 천재들이다. 木谷實선생은 1975년 66세의 나이로 타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천재치고는 장수한 편이다. 하지만 오청원선생은 모든 천재 반열에 오른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신기록을 세우는 장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정신은 너무도 총명하며 비록 일상은 휠체어를 이용하지만 가끔은 산책도 즐긴다고 하니 그 건강이 부럽다.

오청원선생이 바둑계에 남긴 족적은 실로 너무도 선명하고 그 공적과 업적이 너무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木谷實선생과의 공식대국에서 흉내바둑을 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오청원선생은 그 흉내바둑을 깨뜨리는 방법마저도 창시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흉내바둑과 얽힌 얘기들은 나중에 다시 거론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알고 여기서는 미루겠다.

오늘 아침신문에 기막힌 천재가 만으로도 100살을 잘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서 참으로 부러운 마음에 그가 바둑을 평생 직업으로 삼은 전설의 기사 출신이라 바둑에 얽힌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주간 '한국문학신문' 2014년 5월 21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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